5박 6일의 베네치아 여행은 여타 다른 휴가보다 긴 편이었다. 머무는 동안 하도 배를 타고 다녔더니 어지럼증이 가라앉질 않는다. 특히나 글을 읽으려 들면 파도 위에서 울렁이는 느낌이 한층 선명해진다.

어지럼증만큼이나 내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생각이 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미야 상의 새 작품 타이틀이 아니다. (아직 못보기도 했고) 영어 때문에 독일에 와서 한 회사를 4년 조금 넘게 다니고 있는데, 영어는 아직 한참 모자라고, 어떻게 커리어 패스를 나아가야 할 지 모르겠다.

이게 다 베네치아에서 보고 온 부와 예술 때문이다.

일단, 비엔날레를 봤더니 창작의 욕구가 거세게 밀려왔다. 돌과 나무로 이루어진 반듯하고 무채색의 명상적인 공간에 들이치는 빛 한 줄기와 대나무 풍경 소리, 구체적인 부조리를 들추는 가슴 아픈 작업물, 공존의 희망을 보여주는 프로젝트, 생각치도 못한 식으로 에로틱하게 겹쳐진 육체들… 대략 이런 키워드에 관한 영감을 깊이 충전해서 돌아왔다. 내 드로잉 기술, 생성형 AI, 절차적 생성 기술, 3D 모델링 기술 등으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에게 몰두해서 작업물을 생산할 여유가 있는가? 이직을 하고 저녁 시간을 확보한다고 해도, 충분할까? 남은 시간에 하는 일은 주업이 되기 매우 어렵다. 가능한 활동을 다음 정도로 추려보련다.

  1. 현재 커리어를 위한 자기계발
  2. 커리어 쉬프트의 준비과정
  3.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취미
  4. 절대적 시간 투자를 요구하지 않는 부업

내가 생각하는 창작은 이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나는 방해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그 시공이 비어있음을 행복하게 느끼며 집중하고 싶다.

작업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 현대에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성인으로서, 시간은 돈과 치환된다. 일하는 행위와 성취 자체에도 가치가 있지만, 나에게 선택지가 있다면 고용인으로서 회사에 다니는 대신 다른 곳에 시간을 쓰고 싶다. 문제는, 내 작업이 회사원으로 사는 것만큼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커미션을 받는다면, 금액보다는 의뢰인을 위한 마음을 먼저로 일하고 싶다. 그렇다. 돈이 없다. 시간도 없다. 책임은 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일을 그만두는 건 불가능하다. 일과 창작을 병행하긴 어렵다. 불가능한 것보다 어려운 일이 그나마 가능할 듯 하다.

현재 플레이트 위에 있는 주제들을 정리해보자.

  1. 영어
  2. 일상 만화
  3. 시각 작업 by Generative AI
  4. 공간 구성 by 3D 모델링과 절차적 생성
  5. 누드 시각 작품

어떻게든 잘 조합하면 될 것도 같은데. 결국 자신을 튼튼히 관리해가며 시간을 잘 활용하는 수 밖에 없다.

내년에는 영주권을 얻고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회사로 이직하자. 자투리 시간이라도 늘려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