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겠다. 이 글은 내 직관을 이성으로 검증하려는 흔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직관이란 씨앗을 이성으로 키워서 결론이라는 과실을 보려는 작정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퇴사를 생각하고 있다. 이직도 아니고, 퇴사이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쌓은 개발 능력을 활용해 혼자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싶다. 예전부터 하던 생각이 있는데, 나는 일을 하기 싫은게 아니라 회사에 다니기 싫다.

커리어

몇 년 전, 당시 매니저가 나에게 매니저 포지션을 제안했었다. 매니저에 대한 생각은 커녕, 개발자 커리어에 관해서도 별 계획이 없던 상황이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는 변명으로 완곡히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천천히 생각해보라며 자신의 사례에 관해 말해줬다. 자신은 사업을 하고 싶어서 매니저로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로서는 신선한 이야기였다. 계획을 잘 세우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알고보면 허당인 나는 미래에 관해 뚜렷한 비전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 아직 그려지지 않은 지도의 빈 부분을 가리키며 그곳에 뭐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없었고, 세간에 잘 알려진 몇 가지 두루뭉술한 커리어 패스가 시험 문제의 객관식 답안처럼 건조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중요한 점을 깨닫는 게 느리다. 회사를 다니며 개발직에 15년 넘게 몸 담고 난 뒤의 결론은- 나는 조직체계의 위로 올라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내 포지션은 IC3, Senior Software Engineer이고, 한국 직급으로 치면 과장 또는 선임급이다. 글로벌 IT 기업들의 산업표준적 커리어 패스를 따르면, 여기에서 한 단계 올라가는데 갈림길이 있다. 하나는 기술 경로로, IC4 또는 Staff Software Engineer라 불리는 직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 다른 경로는 매니저이다. M1 또는 Engineering Manager가 되는 것이다. 더 높은 직급까지 볼 필요도 없이, 두 직급의 팀 동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저렇게 일하기 싫다는 것이다. IC3에 비해 여러가지 추가 능력이 요구되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조직에서 여러 사람, 여러 팀과 일하다보니 발생하는 오버헤드가 너무 크다. 프로젝트 관리나 업무와 개발과 관련된 회의 뿐만이 아니다. 회의 종류는 정말 다양한데 얼굴을 비추고 5분 정도 발언하면 끝날만한 자리에 한 시간 동안 앉아있는다. 그러다보니 통상 업무를 따라잡기 위해 회의 시간에 자신의 업무를 한다. 기술 사안의 토의를 위한 문서, 팀 간 의사결정을 위한 문서, 소위 윗선 또는 Leadership 보고를 위한 문서, 등 만들어야 하는 자료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따지고 보면 딱히 불필요한게 없을 정도로 최적화를 한 게 이 정도이다. 요약하자면- 큰 조직에서 큰 제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이 협력하려면 어쩔 수 없이 오버헤드가 발생하는데, 이걸 상위 기술직이나 중간 관리자들이 떠맡게 되어있다. 만약 승진을 한다면, 나는 어떤 가치를 위해 그런 업무를 해야 하는가?

큰 제품을 만드는데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필연적으로 관리가 개입한다. 자율성과 자기결정을 유지하려면 각각의 실무자는 그 관리에 어느정도 관여해야 한다. 관리가 필연적이라면, 내가 즐거워하는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그 필연성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싶다. 작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게 좋은데, 회사 생활에서는 그런 기쁨을 누릴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도 예전에는 큰 제품의 작은 기능 같은 것을 하나 둘 만드는 것에도 기쁨과 열정을 느꼈는데, 이제는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제품에 코드를 짜넣는 것에 허망함마저 느낀다. 업무를 위해 능력을 발휘하는 기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여러 작업의 순서나 우선순위를 생각하고, 동료나 이해당사자들과 의사소통하고, 제 시간에 티켓을 쳐내고, 원하는 퀄리티의 제품을 계획한 시간 안에 함께 출시하고, 팀에 기여하는 감각은 아직도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그러나 그 제품은 내 제품이 아니다. 특히나 이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은 더더욱 내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퇴사하고 개인 개발자로 일하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나만의 제품을 만들고, 나이가 들어도 조직체계의 위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커리어가 목표다. 결코 꿈이 아니다. 이미 업계에는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충분히 검증된 모델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어떻게 수행해내는지가 관건이지만.

수입

세간에서는 빈곤하지 않은 노년을 위해서 투자가 필수라고 한다. 투자야 필수겠지… 하지만 그 투자의 평균 수익률이 인플레이션을 앞지를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지? 자산 투자의 대표 지수 중 하나인 S&P를 볼까? 2000~2002년 사이에 S&P 500은 -50%였다. 이를 2007년 정도에 회복하게 되지만 2008년에 다시 -40% 폭락하고, 이 수준은 2013년에야 다시 복귀한다. 하지만 이런 하락은 ‘조정’으로 간주하고 꾸준한 적립식 투자를 이어간다면 지표의 등락과는 상관없이 장기적으로는 우상향, 그것도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다는게 지금까지의 경험칙이다. 굳이 시장을 계속 주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더라도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표적 전략인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전략이 계속 통할까? 물론 통할 수도 있지만, 거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경제 정세의 불안정이 단순한 투자 전략의 몰락을 야기할 수도 있다. 불확실성을 이기는 전략 자체가 불확실성의 문턱에 서 있는 셈이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한다면 금융 자산 시장에 투자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이것만 믿고 있기에는 앞날이 불투명한 요즘이다.

앞선 투자 전략의 불확실성을 논하기 전, 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노후를 위한 금융 투자는 집을 사게 되는 경우 중지되거나 상당히 축소된다. 일반적인 직장인은 어지간한 고소득이 아닌 이상, 금융 투자나 부동산 중 하나에 집중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반면, 단순히 현재의 수입을 늘린다면 현재의 금전적 여유, 노후 자금 준비, 그리고 자가 부동산 마련까지 확보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이 기업의 높은 자리를 노리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이유다. 나의 경우 사업만큼 거창하진 않지만, 수입을 현재보다 늘리는 것이 목표이다. 투자의 불확실성에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수입이 늘어나지 않더라도 먹고 살만하기만 하더라도 언젠가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다.

지리적 제약

독일에 살면서 직장인으로 살고 있으니 겪는 불편함이 있다. 한국에 갈 때마다 가장 효과적인 시점에 긴 휴가를 써야 하고, 보통은 1년에 한 번 밖에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연차를 꽤나 소모한 상태에서 급히 한국에 가야 한다면?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을 때 이런저런 제약을 고려하느라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다 결국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야 한국에 갔다. 의식이 희미한 채로 가느다란 눈물을 떨어뜨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하고 그걸로 끝이었다. 이후로는 지구 반바퀴 거리에 남겨놓은 다른 가족과 친구들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만약 이모나 고모, 처가 식구가 아프면? 나는 또 남은 연차를 세어가며,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제약에 묶여서 최적의 타이밍을 골라야 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독일의 업무시간에 맞춰 오후부터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일하며 체력을 소모하는 날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든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지만, 가족의 병환에 관해서는 최대한 제약을 줄이고 싶다. 시간과 지리 때문에 가슴 아픈 후회는 되도록 피하고 싶다. 가족과 친구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또는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가까이 있고 싶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병원 진료도 어렵다. 올해 대학병원에서 겪은 바로는, 진료에서 부터 검사 예약과 검사, 결과 청취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이후 치료가 필요하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할테고. 결국 진료만 보고 검사조차 못 받았다. 아직 제대로 된 독일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나로선 독일에서 이런 절차를 받기 어렵다. 만의 하나의 건강 이상이 생겼을 때 한국에 길게 머무를 수 있는 패가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혼자 일하게 되면 여행 중에도 랩탑과 휴대용 디스플레이만 있다면 충분히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입에 오르내리던 노마드 스타일이라 어째 철지난 유행같기도 하고, 실제로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래나 저래나 매력적인 선택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시간

혼자 일하게 된다면 상당히 불규칙적인 업무와 수입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잘만 풀린다면 이 두 측면에서 상당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나의 목표는 결코 작지 않다. 퇴사 후 당분간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일만 고를 수 있고, 스스로의 복지에 크게 투자할 수 있으며, 장래의 경제 계획에 불안해 하지 않을 정도의 성공을 이루고 싶다.

건강에 신경쓰기 위한 시간도 확보하고 싶다. 이제 통계적으로 몸에 이상이 발생하는 40대다. 사실 이미 다양한 증상을 겪고 있다. 그러나 충분히 자고, 적당히 운동하고, 명상까지 하기엔 직장인의 삶은 촉박하다. 건강히 살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자아실현

더구나 평일의 1/3에 달하는 시간을 회사와의 계약에 의해 노동을 하는데, 내 노동의 결과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만족스럽지마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인가? 계약과 노동의 가치를 폄하할 순 없지만 내 시간을 쓰는 이상, 세상을 향한 영향력에 내 의지를 더 부여하고 싶다.

내게는 자기 표현을 실현하고 싶은 꿈이 있다. 예전에는 만화를 그리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면, 최근에는 글을 쓰고 책도 많이 읽고 지식을 쌓고 싶다는 욕구도 일어나고 있다. 또는 개발자로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만족스러운 자기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아실현을 위해선, 마음 깊은 곳에서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발상을 떠올리기 위해선 잉여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하려는 일을 통해 적은 노동시간 투입으로 충분한 수입을 확보하고 잉여 시간을 얻는 것이 목표다.

건강과 스트레스

근 1년간 건강에 이상을 겪고 있다.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회사에서 겪은 인사적 사건과 몇 년간 쌓인 야근의 여파와 스트레스의 영향이 상당하다 생각한다. 최근 한달 가까이 잦은 야근으로 다시 증상이 악화되었다. 하지만 야근은 그저 피하려고 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팀이 상위 조직에 책임을 부여받고, 팀원은 조직원들 간에 얽혀있는 상호 책임의 그물 안에 있는 이상, 예상치 못하게 업무가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팀원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동료의 관계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이지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약속한 일정의 유연성에 따라서 업무 강도의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그런 여유를 줄 의사가 없는 것 같다. 이 회사에는 질릴만큼 질렸다.

내가 서울에서 일하는 동안 계속 다녔던 회사는 비교적 나쁜 기업은 아니었지만, 그래봤자 한국의 중소기업이었다. 어느 날은 가슴이 너무 아팠는데 심장 질환이 있는 동료가 협심증을 의심하기도 했다. 야근이 잦은 어느 날에는 축 늘어뜨린 손 끝에 피가 몰리기도 했다. 심장의 박출이 약해서 낮은 곳의 피를 끌어올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 날들에는 언제나 서울의 밤거리를 보며 퇴근하곤 했다. 커리어의 2/3 이상을 이런 종류의 회사들에서 지내온 이상, 더 이상 남이 정한 일정에 휘둘리는 건 진력이 난다.

오늘 밤엔 오랜만에 어두운 방에 앉아 명상했다. 온갖 바람을 내려놓고 세상을 받아들이려 할 때마다 가슴 깊숙한 곳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가슴 전체에 퍼져있는 긴장감이 횡경막 쪽으로 무겁게 내려앉으며 내가 지금껏 버텨온 심리의 무게를 느꼈다. 스스로 얼마나 많은 속박을 걸고 있는지, 이럴 때마다 새삼 놀라고만다. 이런 긴장은 이제 사절이다. 더 바람처럼 가벼워지고 싶다.

어떻게

to be do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