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구직에 고민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최근들어 종종 듣는다. 하지만 도무지 내 입장에선 뭔가 권할 이야기가 없다. 왜 그런가 싶어서 돌이켜보면 나는 순간의 영감이나 다른 이를 향한 동경을 키워서 내 주관으로 삼아온 것 같다. 나한테만 번뜩이는 생각이나 동경을 다른 사람에게 참고삼으라 이야기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이야기는 단체 채팅방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나는 노련하게 현실감각을 키워온 이들의 뒤에 간편히 숨을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영감이 이 글을 시작하는 동기이다. 거기에 한 가지 동기가 더 있다면, 최근들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내 행동원리인데, 30대 중반을 넘어서는 나이라는 회한이다.

최근에 동료와 커리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6월 초가 퍼포먼스 평가기간이기도 했고 최근에는 외부 협력업체의 인력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화제는 커리어로 흘렀고, 우리 주위의 뛰어난 사람들을 언급하다 이야기가 끝났다. 이제 만 36살인 나는 미드급 개발자인데 반해, 몸담은 조직의 시니어 개발자의 나이는 대개 30살 전후에서 시작한다. 이들의 능력은 실로 뛰어나다. 내가 근성과 시간을 들여 어떻게든 주어진 업무를 해결하는데 반해, 이들은 기술적 지식과 업무적 이해도로 적은 시간을 들여 더 우아하게 일을 해낸다. 그 사이에 높은 수준으로 코드리뷰를 하고, 틈틈히 문서를 생산한다. 거기에 능동적이기까지 해서 다른 팀의 코드리뷰를 봐주기도 하고, RFC를 작성하며 일거리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젊은 시니어 중 한 친구와 자기계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데, 자신은 다양한 아티클을 읽고 토이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알고 싶었던, 내적동기와 같이 깊은 것은 묻지 못했다.)

전 회사를 나오기 직전에 팀에 들어온 팀원이 있었다. 20대 초반이지만 개발의 전반적인 분야에 아는 것이 많고, S/W를 비롯한 기술사업 전반의 시야가 넓었다. 그는 10대 중반까지 호주에서 살아서 영어 사용이 편하다고 했다. 종종 그의 자리를 지날 때마다 그가 화면에 화면에 영어로 된 미디엄 아티클을 띄워놓은 것을 봤다. 개발자에게 있어 영어가 지식 습득과 커뮤니티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나의 생각에 쇄기를 박는 듯했다.

지금은 생각에 미치는 정도가 아니다.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시니어 개발자들처럼 일하고 싶어도 영어에 가로막히는 기분이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위해, 오랜시간 문서와 코드 사이를 헤맨다. 새로운 것을 익히려 해도 영어로 된 자료를 바탕으로 습득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커뮤니티에 녹아들고 싶어도 언어가 걸림돌이다.

영어에 올인하려고 해도 하고싶은 것이 많다. 그나마 줄인 주제가 개발, 영어, 그림, 운동이다. 그림을 멈추려고 하면 실력이 퇴보할까 두렵고, 운동을 안하면 일을 할 체력이 유지되지 않는다. 결국 유한한 자원인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언제쯤에나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을까? 마흔이라는 체크포인트를 설정하긴 했지만, 지금의 추세로는 너무 요원한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