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능욕 범죄를 생각하며
소위 능욕방 사건으로 불리는 일반인 딥페이크 사건 때문에 최근 생각이 많다. 이렇게 많은 가해자로 인해 무차별적 피해자가 발생하다니. 모든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없이, 자료는 완전히 제거되고, 가해자들은 강력히 처벌받길.
피해자들의 고통에 이어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특정 가해자 유형, 즉 10대 가해자다. 그들의 수가 너무 많다. (한국어는 역시 어렵다.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현상이 걱정된다고…)
2020년, N번방으로 대표되는 성착취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을 때, 가장 많은 유저를 보유한 텔레그램 채팅방의 참가자가 2만 2천명 정도, 성착취/불법촬영/딥페이크 채팅방 등의 참가자 단순 합산은 26만명이었다. 다만 빠르게 사라지고 다시 생성되는 텔레그램 채팅방의 특성상 여러 방에 중복 참가한 사용자가 많았을테니 26만보다는 적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부분의 유저들은 소수의 큰 채팅방에 참여했을테고, 나머지 적은 수의 인원은 여러 채팅방에 중복 참여했을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이를 비롯해 이런저런 가정 속에서 대강 계산했을 때, 유니크 유저의 수는 5~10만명 안팎이 아닐까 어림짐작만 하고 있다.
만 단위만 되어도 어마어마한데, 10만에 가까운 수는 충격적이다 반인륜적인 범죄를 일으키는 주모자의 주위에서 간접적으로 쾌락을 얻는 것 역시 범죄이다. 그런 범죄자들 몇십만명이나 대한민국 사회의 여기저기에 산재하고 있다. 유유상종이라고, 그런 범죄자들이 특정 그룹에 몰려있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그렇다고 할 지언정 아웃라이어는 통계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다 어디에 있을 지도 모른다. 윤리 수준이 높은 특정 남성 그룹안에서 돌연변이처럼 의태한 괴물의 존재를 상상하는 건, 최소한 나에게는 어렵지 않다. 윤리적 그룹이란 것도 은근히 낮은 확률로 발생한다. 이제는 누구나 알다시피 엘리트 그룹이라고 딱히 윤리적이지 않다. 윤리적 특성을 가진 개인들이 우연히 만나고, 윤리성을 구심점 삼아 사람들이 모여야 비로소 윤리적 그룹이 발생하는 것이다. 경험상, 이런 집단 내에도 괴물을 목격해왔다. 과연 어디가 안전한가? 여성들의 일상같은 불안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현재 딥페이크 사건에 얽힌 가해자 규모는 N번방에 비할바가 못된다. 최근 기사에는 가해자의 30% 이상이 10대라고 하지만, 장난처럼 가볍게 여기며 들불처럼 번지는 확산세를 봤을 때, 가담자의 수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전국적이고, 범죄라는 것을 알든 모르든 딥페이크 능욕 범죄를 가볍게 여기며, 청소년들의 디지털 친화성을 여겼을 때, 전국 남자 중고등학생의 최소 한자릿수는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2024년 현재, 중고등학교 남학생 전체를 대략 13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1%라고만 해도 벌써 1.3만명이다. 2, 3% 또는 5%에 육박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최소 한 번의 접촉을 겪은 수는 적어도 5%를 넘고, 어쩌면 10%도 상회할 거라 예상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딥페이크 능욕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디지털 친화도가 높은 10대에 널리 퍼져있다. 널리.
숫자만이 문제는 아니다. 이들이 ‘무언가 나쁜 짓을 하는 것 같다’ 정도의 의식은 있지만, 집단에 휩쓸려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모자는 말할 것도 없고, 방관하는 단순 가담자의 경우도 ‘나는 직접 만들지는 않고 보기만 하니까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는 것’이라 사고할 수 있다.
다른 문제는 이들이 곧 사회로 나와 대학생이, 사회인이 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포르노 시청 같은 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문제이다. 딥페이크 능욕은 현실에서 가까운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악질적이다. 명백히 능동적인 성범죄이다. 십만 단위의 아이들이 범죄적인 성의식을 가진 채로 어른이 되어 평범하게 길거리를 누비며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 어떤 미래가 초래될까? 감히 예상하기도 힘들다. 이건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 ‘남성 잠재 성범죄자설’이 현실이 되는 것에 다름 없다.
(+ 가끔 이 일을 가벼운 일탈, 포르노 시청 정도로 여기는 오류를 접한다. 포르노 영상이나 에로 만화에 그릇된 성의식을 심는 부작용이 있을 지언정, 판타지 속에서 성욕을 해소하는 기능이 1차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어른들의 방관과 과보호이다. 얼마전 미디어에서는 남학생이 축구를 하는 동안 여학생들은 SNS에서 사진을 내리라는 식의 교육을 했다는 식의 보도를 했고, 제법 큰 공분을 샀다. 여자들은 가만히 두고 가해자를 찾아내서 엄벌하고 남학생들을 교육하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가해자 색출을 둘째치더라도, 찾아낸 가해자에 어른들이 대처하는 현실은 어떤가? 이른바 “애가 뭘 몰라서”라는 식의 방어와 “공부에 방해된다”라며 현실인식의 부정에 다름없는 이야기가 속속 들려온다. 때로는 “내 자식이 그렇다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라는 우려도 들리지만, 오히려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뒤따른다.
이미 수많은 딸들이, 여교사들이, 여성 형제와 어머니들마저 성적 유린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까지 세상은 뭘 했는가? 책임이 있는 어른들은 뭘 했는가? 부모들은 자식들이 시험과 진학만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며 괴물을 키워냈고, 더 극성인 부모들은 인성교육을 아동학대라며 교사의 훈육과 상식 교육을 마비시켰다.
이 지점은 이미 사회가 특수한 개입없이 자정할 수 있는 임계를 넘었다. (추정)10만이 넘는 10대 남성 청소년이 아주 쉽게 악질적 범죄에 손대고 있다. 이게 사회의 큰 균열이자 붕괴 조짐이 아니고 무엇인가? 누군가에겐, 특히 자식을 잘못 키운 부모들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정석적인 대처만이 유일한 길이다. 아이들의 가벼운 장난이 아니라, 악질적 범죄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처벌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마치 이 사안이 가볍다는 잘못된 신호를 사회에 보낼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공포와 절망을 안길 것이다. 처벌받지 않은 아들들은 다시 같은, 또는 더 큰 범죄에 손을 댈 것이다. 그리고 딸들을 무참히 유린할 것이다. 한번 사회에 들어선 위협은 몇십년이 지나도록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