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의 새 회사 생활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를린의 IT 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직 백엔드 엔지니어에요. 맘 졸이며 6개월의 수습 기간(probation period)을 마친 지가 겨우 한달쯤 지났으니, 이제 만 7개월이 지났네요. 되짚어보면… 베를린에 도착한게 2019년 4월 말이고, 어렵게 면접을 통과하고 취업 비자로 난리를 겪은 끝에 근무를 시작한게 10월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적잖은 일들이 있었어요. 확실히 낯선 나라의 직장 생활은 생경한 경험입니다. 슬슬 느낀 점들을 글로 정리할 때도 되었지만, 나의 깨달음이 얼마나 식상한 것인지, 혹은 내가 얼마나 얄팍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게 될까봐 적잖이 망설여지네요.
어쩌다 왔더라
외국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대 후반에 받은 4주간의 군사훈련이었습니다. 의외일 수도 있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대단한 사람들이었거든요. 결국 그 경험은 미래 구상을 완전히 뒤바꿔버렸어요. 하지만 꿈을 계획으로 만들고 실행까지 도달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한국 나이로 서른 여섯에서야 최소한의 준비를 간신히 마치고 외국으로 나올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행선지가 왜 하필 베를린었냐면,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어요.
- 첫째는 무턱대고 연속적인 구직 활동을 할만큼 IT 스타트업이 많기 때문이었고,
- 비자 제도와 외국인 차별 문제에서 비교적 나은 곳이고,
- 비영어권 국가 출신의 사람들 사이에서 영어를 쓰는게 더 나아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언어 문제에 관해선, 미국이나 영국의 기업들은 영어 능력에 관한 기대치가 높을테니 인터뷰나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거든요. 물론 베를린에서도 나의 형편없는 영어 실력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한숨)
다른 후보지도 있었습니다. 따뜻한 나라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싱가폴도 염두에 뒀어요. 한국과 가깝고 음식이 입에 맞을 것 같아 일본도 아주 잠시 생각했습니다. 추운 건 싫지만 캐나다라도 벤쿠버라면 살만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나름의 이유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냥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베를린 행을 결정했습니다.
해외에 나가지 않고 한국에 머물고 있더라도 취직은 가능합니다. 베를린 소재의 IT 기업들은 언제나 인력부족 상태이기 때문에, 직접 베를린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과 화상채팅으로 최종 인터뷰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현지에서 구직하는 것이 조금은 더 유리하지 않을까, 싶은 (얄팍한) 기대가 있었죠. ‘내 실력으로 구직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오만함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배수의 진을 치고 절박함을 이용하고 싶었기도 했죠. 서른 다섯부터는 미래를 생각하면 언제나 초조하고 절박한 심정이었거든요. 독일은 6개월의 취직준비 비자를 발급해주기 때문에 관광비자(쉥겐비자)로 머물 수 있는 3개월의 기간과 합치면 최장 9개월의 구직활동이 가능합니다. 하나 더, 적잖은 나라에선 관광비자 보유자의 구직활동이 금지되지만 독일에서는 이마저도 허용된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자면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무모하기 짝이 없었어요. 실력이 문제가 아닙니다.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지금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을 겁니다. 좋은 회사를 때려치면서 감행한 도전에 실패했다며 후회하고 있을 수도 있죠.
결과적으로는, 생각보다 빠르게 생각보다 좋은 회사에 취직이 결정되었습니다. 오퍼를 받은 날부터 출근일까지 3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가벼운 마음으로 쉬기도 했죠. 예전에 꿈도 못꾸던 곳을 여행하기도 했어요. 스위스는 정말 좋았지만, 내친 김에 아이슬란드를 다녀오지 못한게 아쉬워요. 비록 비자 문제로 골머리를 썩긴 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로 남겨놓죠.
이름은 같지만 내용은 다른 개발 프로세스
원래 회사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글인데,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렇듯, 이 회사의 개발 부서들도 (대체로) 애자일을 S/W 개발 프로세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슈 관리 도구로는 업계 끝판왕인 JIRA를 애자일 프로세스 관리 도구로도 사용합니다. JIRA의 티켓 관리는 애자일 프로세스 속에서 자연스럽게 처리됩니다. 스크럼 주기 관리, 스크럼 보드, 칸반 보드, GitHub과 연동 등은 확실히 편리해요. 특히나 스크럼/칸반 보드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느려서 사용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쾌적하게 동작합니다. JIRA가 워낙 강력한 기능을 제공하는 좋은 도구지만,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활용하지 못했어요. 새삼 너무 좋다고 느껴요. 흥미로운 건, 다양한 활용법과 사용 사례를 제시하고 실천하는게 실무자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애자일의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참여자 개개인의 역량이에요. 구직을 할 때, 어느 기업이나 애자일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경험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역시 회사에 들어와보니 애자일이나 스크럼이 뭔지 설명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도 모두가 원활히 개발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부터 일단 애자일을 이해하는 사람을 채용할테고, 채용된 사람들도 개발 방법론에 대해 공부를 할테죠. (실제로 동료들은 역량 강화에 관해 매우 프로페셔널합니다.)
기업도 채용했다고 손놓지 않습니다. 교육의 기회도 제공을 해줄 뿐더러, 애자일 코치를 팀에 할당해서 모자란 점을 커버합니다. 애자일 코치는 애자일 세레모니를 관리하고 애자일 자체를 가르치는 등 하는 일이 많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들의 존재가 반가웠던 때는 애자일 세레모니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토론을 중재하거나 (데일리 스탠드업에서 지나치게 길어지는 논의를 멈춘다던지), 리뷰와 회고를 주도하며 창의적인 방식으로 팀의 개선점을 도출할 때입니다. 직접 실무에 참여하지 않고, 애자일이라는 프로세스만 관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잘 훈련된 제3자는 좋은 피드백의 원천이자 객관적 길잡이인 것입니다.
(물론 애자일 코치들마다 능력차가 있다보니 답답한 일도 있습니다. 특히, 실무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실무에 대한 이해를 등한시하는 애자일 코치라면 회의 중간중간에 핀트 나간 이야기를 할 때도 있죠.)
한편 각 개발 조직에는 구성원으로서 PM이 한 명씩 할당됩니다. ‘구성원’이라는 걸 굳이 강조한 이유는, PM은 관리자나 외부 투입 인력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에요. 또한, Project Manager가 아니라 Product Manager입니다! 이름이 다른만큼 하는 일이 달라요. 애초에 한국에서 Project Manager라면 상당한 권한과 책임을 지지만, Product Manager는 엔지니어와 함께 실무에 깊이 투입됩니다.
두리뭉실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조직내 이슈를 관리합니다. 조직을 관리하는 게 아니에요. PM이 매니저를 겸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회사에선 테크리드가 매니저입니다. 매니저가 아니다보니 인사권이 없고 권한이 적어요. 팀내 이슈 관리 이외에도 사업부서와 개발부서의 의사소통 창구 역할을 합니다. 개발자 역시 기업의 구성원이니 사업을 이해하는게 마땅하지만, 이를 주도하는 사업부만큼 넓고 깊은 시각을 가질 수 없기때문에 PM이 이를 도맡는 것이죠. 이러다보니 원칙적으로는 JIRA 티켓의 관리도 PM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형편에 맞춰서 개발자도 참여하고 있어요.
팀의 엔지니어들을 모두 모아놓고 몇 시간에 걸친 계획 회의를 하고 있으면,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게 무슨 시간낭비인가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럴 때는 PM이 섬세하고 기민하게 움직입니다. 시간낭비를 줄이기 위해 시니어 엔지니어 한 명과 함께 회의를 하거나 세부적인 사항을 엔지니어 개개인에게 찾아가 물어가며 기술적 컨텍스트를 파악해가죠. 그러다보먼 어느새 PM이 설계의 큰 틀과 세부 작업의 티켓을 만들어놓기도 합니다. 기술 의존도가 높은 업무는 엔지니어와 함께 한다지만, 웬만한 이해도가 아니면 할 수가 없죠. 보고 있자면 꽤 넓은 범위의 업무를 커버하면서 하루 종일 이 팀 저 팀 이 사람 저 사람과 회의를 하고 있고, 다양한 문서를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다소 고단해 보기기도 하죠…
뭔가 잘 와닿지 않는 내용들의 나열 끝에 어정쩡하게 결론을 내자면, 이곳의 애자일은 잘 동작합니다. 플래닝은 진지하고, 리뷰와 회고는 활발하고, 개발자와 PM이 잘 협업하고, 애자일 코치가 절차의 빈틈을 잘 메꿉니다. 다른 흥미로운 점이라면, 이 방법론이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귀찮은 ‘제약’이 아니라, 개발자들과 관리자들이 긴 시간동안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짜낸 지혜의 산물이란 걸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보안의 핵심은 완벽함이 아니라 적절함
개인적으로는, 기업 정보보안이란 비효율적인게 보통이라 생각해요. 어떤 보안 프로토콜을 마련하든 정보가 새어나갈 구멍은 많고, 대체로 기밀이 유출되는 경로는 (보안 프로토콜과는 무관한) 내부자의 의도적 유출이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보안을 찾느라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정도껏 하지 않다간 업무보다 보안 절차에 더 노력이 투입되는 경우도 봤습니다. 보안이란 노력만큼 효과가 있는지 언제나 의문의 대상이 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
한국에서 들은 극단적인 케이스 하나가 있었는데, 이 회사는 직접 소유하는 서버에 안갖 데이터를 보관하는 것에 편집적이었어요. 직원 PC에도 데이터를 저장하지 못하게 했고, 사무는 원격 VM을 통해 클라우드 베이스 소프트웨어만 사용하게 했죠. 높은 퍼포먼스가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치할 때마다 관리조직의 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PC를 끌때마다 OS가 초기화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회사의 직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어요. 아… 암 걸린다…
거기에 비하면 이 회사의 보안 지침은 실전적인 편입니다. 물론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보안이 필요한 지점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되, 보안 수준을 높힌다는 핑계로 의미없는 강화는 하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KPI를 위해서라도 쓸데없는 보안 절차를 늘린다는 농담을 자주 했었는데요, 어쩌면 농담이 아닐지도…)
어디에서나 반드시 해야 하는 네트워크 보안이나 작업 PC 제어 정도를 제외하고는, 보안 프로토콜의 절차는 팀원들이 지켜야 할 베스트 프랙티스에 의존합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민감한 정보를 보안되지 않는 곳에 보관하지 않는 것이에요. 아무리 다양한 보안 솔루션으로 장식을 해봤자 공개 GitHub 저장소에 백엔드 서버의 SSH 정보를 푸쉬하는 하나의 실수로도 보안에 구멍이 뻥 뚫리는 거죠.
전 회사에서는 퇴사자가 개인 GitHub에 백엔드 서버들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게시한 적이 있었어요. 한참 동안 게시된 채로 있었는데, 그도 회사도 해커도 발견하지 못했던 거죠. 하지만 악용되었다간 아찔한 일이 발생했을 겁니다.
다시 원래 화제로 돌아와서,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Credential과 같은 민감한 정보는 매니저가 관리하는 보안 볼트에만 보관하고, 볼트 접근 권한이 없는 경우 PGP를 사용해 메일로만 주고 받습니다. 개인 채팅 채널에서 공유해도 안되고요. CI나 서버 인스턴스에 credential을 세팅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CI나 클라우드 서비스에서도 보안 키 보관소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됩니다.
물론 시스템 수준의 보안이나 곳곳 계층에서 보안 솔루션을 사용하긴 하지만, 이것도 실용적입니다. 가령, 어설픈 피싱 이메일 감지 솔루션 같은 건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메일 도메인과 인증서 검증으로 신뢰할 수 있는 메일 송신자를 판별할 수 있으니까요. 골치아프기 마련인 VPN도 괜찮습니다. 일반 망에서 접근 권한과 VPN을 사용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의 구분도 적절하거든요.
작업 기기, 특히 작업 PC는 상당히 제어하는 편이긴 합니다. 웬만한 직원에게는 OS admin 권한을 주지 않아요. 특히 보안 팀이 원격으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거나 업데이트하는 건 개인적으로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시스템과 절차가 효과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한 조치를 취하지만, 대체로 개인의 실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만큼 보안을 쉽게 지킬 수 있는 뒷받침을 해줍니다. 으음… 적고보니 그냥 상식적인 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의 보안 사례들을 듣고 있자면 이정도로 상식적인 환경이 흔치만은 않은 것 같네요.😅
모두가 서로의 동료일 뿐
처음에는 그럴듯하지만 까보고 보면 허무한 구호가 참 많습니다. 개혁, 창의성, 혁신, 그리고 ‘수평적문화’… 물론 들고 나오는 쪽은 변화를 바라고 구호를 외치겠지만, 스스로 하는 말조차 이해조차 못하고 (어쩌면 변화는 원하지도 않고) 좋은 결과만 바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수평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이가 실제로 수평성을 경험할 때면 반사적으로 지위와 힘을 내세우는 장면은 이미 적잖이 봤답니다.
내 일터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약 100개 국 안팎일 거에요. 이들이 온 지역의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거나 어울리…진 않습니다. 상호 이해를 위해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긴 하지만, 이곳은 일하는 곳이지 문화를 누리는 곳은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죠. 다양한 배경의 사람이 일터에 모이다보니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하는데, 각자 문화권의 관습보다는 일터에서 제시하는 원칙을 바탕으로 행동양식이 재구성되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의 개성에 따라 국소적인 행동양식은 달라지겠지만, 한국에서 겪어온 그 어느 곳보다 일관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양식 입니다.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도요. 적어도 한국에서는 겪어보 못한 수준으로 폭력적인 권력 차이가 적은 관계를 맺습니다.
물론, 직급과 책임에 따라 권한이 분배되긴 합니다. 하지만 권력성 폭력이 위에서 밑으로 내려꽂히진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조직개편이나 인사조치 등 상위 협의체의 결정에 따라 기계적 의사결정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개개인 간의 관계에서 권력 차이를 느끼는 경우는 적습니다.
또한 다른 조직 간 소통의 벽도 얇습니다. 한국에서는 사소한 사안마저도 상위직급자를 통해서 다른 조직과 의사소통하는 경우를 적잖이 겪었는데, 이곳에서는 아주 심각하거나 민감한 사안이 아니고서야 그럴 필요가 없어요.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든 다가가서 ‘하이! 하우이즈잇고잉? 두유노 블라블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만이죠.
이들의 인식은 꽤나 실용적인 것 같아요. 대충 이런 것 같은데요… “우리는 함께 돈 버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조직의 관리를 위해 편의상 권한과 책임을 나눴지만, 권력 놀음을 위한 상하관계는 없다.“
(밸런스 패치를 위해 첨언하자면- 사적인 권력 차이는 없다고 봐야겠지만 권한 차이를 눈치 눈치보지 않을 순 없습니다. 누군가 저성과로 해고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인사권이 있는 매니저 앞에서 주눅이 들죠. 사적인 권력행사가 아니라지만, 시스템 안에서 분배된 권한이 다르고 그 영향은 개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진짜 별로였던 장면을 본 적도 있습니다. 팀빌딩 자리에서 간단한 게임을 하는데 접대하는 듯이 상급자에게 져주는 이들도 있던 것이죠… 하나만 더, 함께 실무하는 이들 사이에선 그럭저럭 사적인 권력차를 느끼기 어렵지만, 성과를 쪼임당하는 매니저들은 C클래스 앞에서 쩔쩔 매는 듯합니다. 😕)
능력 좋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기까지 하면…
하나 감탄스러운 점은, 가까운 동료 모두 일을 너무나 잘합니다! 독일의 IT 인력에 대한 한국인들의 중론은 ‘하는 말에 비해 실무 능력은 떨어진다’였는데, 이 회사나 부서만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을 잘합니다! 업무 집중도가 높고, 퍼포먼스도 상당하고, 전문 지식도 풍부하고, 의견 개진도 잘하고, 사고도 논리적이에요. 주어진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코드나 아키텍처의 개선에도 적극적이고, 업무 프로세스나 회의 방식까지 개선하려고 혈안입니다. 혈안이에요. 혈안이라고요. 왜 이렇게 열심히 잘하는 거지! 더구나 함께 몰려다니며 기술 밋업도 참가하고,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다른 팀의 PR에도 흥미를 느껴서 마구마구 리뷰 댓글을 달기도 해요. 이 사람들은 이 일이, 소프트웨어 개발이 즐거운가봅니다. 할 말이 없어요.
거기다 이 사람들, 열심히 일하기까지 합니다. 일정의 압박인지 자발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밤 12시에 코드를 푸쉬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에요. (그 중 최소한 한 명은 워커홀릭이긴 해요. 나에게 ‘나처럼 살면 안돼’라고 말한 친구가 있답니다. 나한테 충고할 시간에 네 인생을 즐기렴…😢)
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생각을 하면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나도 이 일을 더 즐기고 더 잘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한데, 어쩌다 마음이 이렇게 차가워졌을까요?
노동 환경은 정말 좋지만 IT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독일은 노동자의 권리가 잘 지켜지는 곳으로 알려졌는데요. 한때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 잘못이야(Were we born on the wrong country?)’라는 책을 읽고 유럽의 노동환경에 동경을 가지기도 했어요. 한국에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부분적이고 편파적이지만) 이런 내용들이 소개되어 왔죠.
분명 한국보다 좋은 점은 많습니다. 연차는 대체로 25일이 이상이라 넉넉하고, 중요한 일정만 피하면 연차 사용에 제한은 없습니다. 병가 대신 연차를 쓸 일도 없고, 며칠 아파서 근무를 건너뛴다고 눈치주는 일도 없죠. 순수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쉬어서 하루 빨리 업무 퍼포먼스를 회복하라는 의도도 있답니다. 칼퇴근도 자유로워요. 계약된 시간만큼 일하면 문제 없다는 식이지만, 사적인 사정으로 조금 일찍 퇴근하거나 늦게 출근할 수도 있어요. 내가 있는 팀은 화상 회의가 기본이라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원격 근무에 특별한 제약은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제약이 없냐면, 원격 근무의 흔한 사유 중 하나는 가구 또는 택배수령인 수준이에요. (반대로 배달물 수령이 만만치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하하 DHL 이놈들 하하)
한국의 노동환경도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정부의 지침이나 규제가 새롭게 적용되는 중이고 잡음이 많다죠. 회사마다 지침을 해석하는 방향도 다를테고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래 전부터 모두에게 당연시되는 것들이라 이해 충돌은 적은 것 같습니다.
나 역시 출근 후 네 달 정도는 정시에서 1시간을 넘기지 않고 퇴근했어요. 하지만 근 두 달 동안은 독일의 선진 노동문화를 겪지 못했습니다. 크런치 같은 건 없지만, 마감은 전세계 IT 종사자가 피해갈 수 없는 늪인 것 같아요. 특히나 타사와의 협의에 따라 일정이 정해지는 부서이다보니 갑자기 발생한 일정의 압박을 피할 수 없었어요. 특히 4월은 원격근무를 하면서도 매일 야근을 했고, 거의 모든 주말에도 일을 했습니다. 런칭을 코 앞에 둔 기간에는 노동절을 낀 사흘의 연휴였는데, 프로젝트에 관련된 적잖은 사람들이 휴일과 주말 밤낮없이 일하기까지 했죠. (그나마 종교 때문이라도 일요일에 일을 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한둘은 은 연휴 사흘 내내 일한 듯…) 다행히 지금은 바쁜 일정이 지나갔고, 서비스는 굴곡진 과정을 거쳐 가까스로 런칭했습니다.
한국에서 직전에 다녔던 회사의 업무 환경이 너무 좋았어서, 그때와 비교하면 약간의 야근이 추가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사실 이런 야근이 흔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촉박한 일정이 다시는 안생겼으면…
공포의 프로베?
독일 기업에도 수습기간(probation period)이 있습니다. 모든 기업이 모든 직급에 적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일반직은 6개월입니다. 이 기간에는 말 그대로 ‘잘릴 수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간단히 잘릴 수 있습니다.’ 혹자는 말하길, ‘썸타는’ 기간이라고 하더군요. 먼 타국에 와서 구직을 한 입장에서는, 수습 기간에 잘린다는 건 엄청난 공포입니다. 비자가 보장하는 재구직 기간은 한정적인데요, 혹여나 재구직에 실패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인생 계획에 차질이 생깁니다. 가족이 함께 왔다면 큰 재난이 되겠죠. 이후에 찾아올 실의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 역시 그런 불안과 함께 6개월을 보냈습니다. 정확히는 다섯 달은 불안으로, 한 달은 공포로 지냈어요. 왜냐하면 나보다 한 달 앞서 입사한 동료가 수습 기간 끝을 코앞에 두고 잘리는 걸 봤기 때문입니다. 매니저는 ‘계약 연장을 하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라고 말하면서 ‘다른 팀원들은 100% 괜찮을 것이다’도 부연했지만, 누구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어요. 정든 동료를 떠나보내야 하기도 했지만, 매니저를 제외한 모든 팀원들이 수습 기간 중이었기 때문이에요. 며칠 동안은 우리끼리 모일 때마다 편치않은 기분을 나눠야했고, 억측과 불만을 토해냈습니다. 그리고 수습을 한 달 남긴 나의 행동 전략은 ‘일을 더 열심히 하자’였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정시 퇴근은 포기하게 됐죠. (그렇다고 정시퇴근 한 날이 없진 않지만 😛)
다행히 채용은 유지되었으니 더 이상 불안할 일은 없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떠난 친구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그대로 느낍니다.
어떻게 이 영어 실력으로 인터뷰를 통과했을까
독일에서 취직하는 계획의 가장 큰 불안요소는 영어였습다. 독일에 넘어오기 전 2년 동안은 적잖은 시간을 투자하며 공부했지만, 공부를 시작한 나이가 워낙 늦기도 했고 공부하는 방법이 워낙 나이브해서 (더 열심히 해야 했다!) 괜찮은 실력에 다다를 수가 없었어요. 면접을 위해서는 깊은 주제의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스몰토크는 원활히 해야 하는데, 상대가 웬만큼 배려해주지 않는 이상은 어려웠죠. 음, 아직도 어렵습니다.
사실 면접 통과는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HR과의 첫 통화에서 잘 듣지 못한 부분은 인터넷 탓을 하면서 되물어봤어요. 코딩 테스트는 문제 코드에서 문맥을 읽어가며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어요. 다행히 평소보다 코딩이 잘됐고,다른 질문들도 코드를 바탕으로 대답할 수 있었어요. 그 이후 두 과정은 운이 좋았습니다. 면접관들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담백한 억양을 가졌기 때문이었죠.
리크루터에서 어려울 거라고 언질을 들었지만, 면접 마지막 과정은 정말 난관이었습니다. 일단 면접관은 키가 180이 훌쩍 넘는 근육 거구였는데, 민머리에 눈썹이 옅고 눈 그늘이 짙었죠. 작은 회의실에 그가 들어왔을 때 내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느꼈습니다. 퍼뜩 ‘바이킹인가? 나를 죽이러 온 건가?’라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백엔드 아키텍처를 비롯해서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는 내용이 면접의 골자였는데, 그가 빠른 미국식 억양을 구사하며 긴 백그라운드 설명과 설명을 던질 때는 의식이 살짝 흐려졌다. 사실 설명과 질문을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아는 것 모르는 것을 다 끌어모아 그럭저럭 그가 원하는 답을 해줄 수는 있었지만, 질문을 잘못 이해해서 여러번 되물어야했고 다시 설명을 듣기도 해야 했어요. 어쨌든 문제는 영어였습니다.
다행히 면접에 통과해 이 회사의 오퍼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회사와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인터뷰 내용이 문제인 경우도 있었지만) 고배를 마셔야했죠.
하지만 진짜 고난은 입사 후였어요. 온보딩을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팀 소개를 듣는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였죠. 회의에서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 귀만 쫑긋거리며 반쯤은 멍때리기 모드로 들어가는 정신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가장 고문같은 시간은 사적인 대화를 할 때였는데요… 전혀 어떤 컨텍스트 없이 훅 들어오는 대화에는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적응을 떠나서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려던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싶어요. 그대들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영어가 일천해서 그랬어. 내 태도에 상처받았다면 정말 미안해.
집중해서도 다른 이의 말을 1/3 정도 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런 집중상태가 하루 종일 이어지니 퇴근할 무렵에는 정신이 멍해지고 이명이 생길 지경이었습다. 가장 속상한 점은 언어가 업무 능력에 영향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간단히 이해하는 것을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문서와 코드 속에서 헤매야 했죠. 나보다 늦게 들어온 동료가 빠르게 업무 컨텍스트를 파악해가는 것을 보면서 열등감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별 수 없죠. 어떻게든 노력하고 나아지는 수 밖에.
나의 팀은 당시 막 생기기 시작했고, 테크리드과 나를 포함해 모두 세 명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천운이 따랐는데, 같은 팀 사람들의 영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어요! 테크리드는 우루과이 사람인데, 놀랍게도 내 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정말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하고, 한 가지를 여러 방식으로 설명해서 어떻게든 전달해내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다른 한 명은 브라질 출신이었고, 그 자신도 영어가 모자란다고 말하고 했어요.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할 때면 서로 ‘내가 영어를 못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며 웃곤 했어요. 하지만 그 친구는 나에게 대한 것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과는 수월히 영어로 대화를 했습니다. 내 앞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여준 고마운 친구였어요. (하지만 이 친구는 수습기간을 단 며칠 남겨놓고 해고당했습니다. 아직도 유난히 고맙고 안쓰러운 친구에요. 😭)
그래도 이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반년이 넘어갑니다. 많은 회의 시간을 멍때리며 보내긴 했지만, 이제 말소리에 바짝 집중하고 컨텍스트까지 조합하면 어느 정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순 있어요.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 억양도 늘어나요. (현재 가장 높은 난관은 러시아식 영어 억양입니다.) 내 영어의 어떤 면을 어떻게 개발해야 할 지 감을 잡을 것 같고요.
해외로 나온 건 영어능력을 개발하려는 목적이 상당히 큽니다. 현대 지식의 절대적인 양이 영어로 쓰여지고 영어로 번역되기 때문에, 최신 양질의 지식을 곤란없이 습득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내 모자란 영어 능력을 근거로 베를린을 목적지로 정한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근자감이었어요. 운이 너무도 좋았죠. 다행히 영어로 이야기하는 공동체… 이 회사에 받아들여졌으니 이 운을 기회삼아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겠습니다.
시간을 잘 보내야지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이 되는 해의 12월에 제주도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서른 여섯 살에 베를린에 도착했어요. 다음은 어디로 갈 지, 혹은 더 머무를지는 그로부터 대충 5년 후에 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마흔 살일지 마흔 한 살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충이라서요.
이곳에 있는 시간동안 되고싶은 사람이 될 겁니다. 책도 더 읽고, 운동도 더 하고, 커리어도 개발하고, 언어 능력도 기를겁니다. 무엇보다 그림을 더 그려서 창작을 하고 싶어요. 드로잉 모임에 들어가 누드모델을 해보는 것도 작은 꿈입니다. ☺️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를 계발하기보단 아직도 생활과 일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온지 1년, 일을 한지 7개월인데도요. 다음 행선지를 찾기에 5년은 모자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기왕 들어온 크고 잘 나가는 회사에 잘 들어붙어 봐야죠. 그래야 첫번째 목표인 커리어 개발과 영어 향상이 가능할테니까요.
어째 상당히 두서없이 길어진 글이네요. 앞으로는 좀 간결하고 주제가 또렷한 걸 들고오…도록 노력해보죠. 반년 후가 될 지, 일년 후가 될 지, 심지어 읽을 사람이 있을지 조차도 모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