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혹은 업무적인 의견을 나누다가도 비슷하지만 어딘가 핀트가 벗어난 대화가 의미없는 핑퐁처럼 오가는 경우를 본다. 그 중에는 허무하게도, 서로 다른 것을 전제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의 전제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깨닫고 머쓱해지기도 하고, 왜 이해 못하냐며 서로 따져들다 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 사실은 꽤나 흔한 일이다.

이런 현상을 함축하는 용어가 있는데, 고맥락 문화 또는 고맥락 언어이다. 많은 의미를 사회적 맥락, 비언어적 신호, 전통, 규범 등에 의존하여 전달하는 문화와 의사소통 방식을 의미하는데,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대표적으로 고맥락으로 분류된다. 다르게 말하면 남들도 나와 비슷하고, 나와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성이 짙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다른 사회적 맥락을 전제하는 사람들끼리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저 속으로 불편함을 쌓아가다 어색하게 대화를 멈추거나 끝내 목소리를 높히며 충돌하는 엔딩도 꽤나 많다. 그런 불편한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여러 이유 중 하나 또한 고맥락 문화의 특징에 있다. 공동체적인 통일성과 규범을 중요시하다 보니 다른 사회적 맥락 또는 다양한 세계관을 도덕적으로 그른 것으로 여기기 쉽고, 바로잡거나 비판하려고 드는 일까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서로 다른 것을 인식도 못하고, 다른 점을 인식해도 인정하지 못한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된다.

정치적 견해 차이는 쉽게 좁힐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여러 정치적 견해를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현재 우리의 토론 수준이 아닐까. 소위 말하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동의하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에 MBTI가 알려지면서 개개인의 성향이 다르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견해 차이가 서로의 세계관 차이에서 온다는 것이 그리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 고맥락 문화가 정치 토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조금씩 다르다보니 다른 정치적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악마화와 혐오, 날선 비판과 도덕적 계도를 멈추자.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세우되, 범죄가 아닌 이상 선을 넘지 말자. 서로의 MBTI가 다른만큼 서로의 세계관 차이를 인식하면서 동의하지 않는 것을 명확히 인정해야 비로소 합의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토론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만 더, 다름을 인식 못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인터넷 댓글란이다. 인터넷 주 이용층이 10대 중반부터 50대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그 범위 바깥의 이용자도 분명 존재한다. 그 밖에도 교육 수준, 생활 조건, 성격, 세계관, 정치적 입장 등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 차이를 발견하기 힘든가보다. 인터넷 세대의 어휘력 논란도 그렇고, 댓글로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 조롱이 빠지지 않고 달리는 걸 보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