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으로서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
한때 믿고 있었고, 꽤 오래 전에 철회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붙들고 있는 미신 중 하나는, 영어 능력은 감각과 같아서 그냥 많이 하면 향상된다- 는 것이다. 말도 안된다. 일례를 들자면, 많은 외국어 학습자들에게 되풀이 되는 일이 있는데, 외국어로 글을 읽다가 ‘여러번 봤었고, 사전에서 찾아보기까지 한 단어’인데 도무지 의미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이다. 외국어 공부 빈도가 너무 낮거나, ‘대충’ 외웠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대체로 후자이다. 처음에 노력을 기울여 단어를 제대로 기억했다면, 반복되는 답답함과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어떤 노력이냐면, 시간을 조금 들인 반복이다. 반복은 가장 강력한 암기 도구이다. 한두번 외운 어휘는 몇시간 또는 며칠 내로 잊지만, 서너번 노출된 단어는 그보다 오랫동안 -최소 목표는 몇주~몇달 동안- 기억할 수 있다. 그러다 몇 달 안에 다른 글에서 그 단어가 나온다면 더더욱 장기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단어장을 만들면서 반복 암기하는 것이다.
다독을 하면서 한 단어의 의미가 머릿속에서 완전히 흐려지기 전에 다른 글에서 찾아내어 기억을 강화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독해의 양이 많더라도 그 어휘가 조만간 (며칠 안에) 반복될 지는 보장할 수 없다. 며칠이 아니라 몇 주 후에 그 단어를 찾아낸다면 기억은 기억대로 흐려졌고, 단어의 뜻을 회상하느라 읽기의 흐름이 끊겨서 피로가 더해지고, 다시 단어의 뜻을 찾아야 하느라 들이는 시간 때문에 다독을 하는 것 차제가 어렵다. 단어장을 활용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결과적으로 훨씬 효율적이다.
그래도 자연스럽게 익히는 (주로 많이 읽고 많이 듣는) 어프로치에 대한 미련은 끈질기게 남아있다. 아동과 청소년이라면 분명히 가능하다. 누구나 모국어는 자연스럽게 배웠다고 느낀다. 그래도 굳이 차이를 적어보자면- 그들의 미숙함은 성인보다는 관대하게 받아들여지고, 또래 내에서 의사소통 체험의 기회가 많고, 나이가 들면서 점진적으로 발달시킬 수도 있다. 취학 전에는 부모로부터, 취학부터는 교사로부터 꾸준히- 긴 시간동안- 배운다.
반면 성인은 외국어 사용의 첫발부터 ‘성인의 세계’이다. 관대함 속에서 점진적으로 체험하며 자연스럽게 발달시킬 여유가 없다. 돈을 들이지 않으면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 많이 읽고 듣더라도 적정 난이도의 인풋을 계속 찾기 어려우며, 성인의 관심사에 맞는 것을 찾기도 어렵고, 생활 속에서 부딛히며 익히는 것과는 자극의 강도 역시 다르다. 거기다 감각적 학습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무뎌지기 때문에, 삶의 지혜를 짜내 의식적 학습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성인에게는 자연스러운 학습은 정도가 아니라, 한계마저 있다.
언어 학습은 인풋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읽기와 듣기가 우선되어아 하지만, 성인은 특히 읽기 능력을 우선시하면서 다른 영역의 발달을 견인해야 한다. 영어를 들을 때가 읽을 때보다 많은 양을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학습용 자료라면 분명 모르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문장을 되씹고 어휘 뜻을 찾기에는 읽기가 훨씬 도움이 된다. 같은 시간동안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겠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적은 양을 이해하며 읽는 것이 낫다.
지금까지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아직도 읽기와 어휘 암기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 나아진 부분이 있다. 독해의 시간이 빨라지고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다. 어휘가 조금 나아진 영향도 있지만, 다양한 구조의 영어 문장에도 익숙해지고 있다. 예전이라면 Economist의 텍스트는 한 문단 읽고 던져버렸을테지만, 이제는 시간을 들여서 읽을 수 있다. 듣기 영역에서 나의 가장 큰 약점은, 여러 구(clauses)와 절(phrases)로 이루어진 긴 문장의 이해력이었다. 하지만 수준 높은 텍스트를 접하고 독해 능력이 늘어나면서 이 특정한 약점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명확한 방향으로 꾸준히 진행했더니 흔치 않은 속도로 실력이 늘고 있다.
무슨 일이든 계측 및 관리가 가능한 ‘체계’가 있어야 효율성과 점진적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현수준에 적합하면서 효율적인 단어암기법 방식을 고안해볼까 한다.
(edited on Nov 16) 개인적 경험과 주워들은 지식을 바탕으로 단어암기 시스템을 고안해봤는데, 이 시스템의 특징(반복적, 맥락과 연상을 활용, 효율적) 모두를 단어암기 앱이 제공한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은 접어두고 WordUp을 1년치 구독했다.